노트

2022 대선 이야기

2022. 3. 15. 20:26

앞으로의 5년을 결정할 대선이 끝났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 블로그에 글을 좀 적어 보려고 한다.

 

최근 여초에서 이재명 붐이 불었는데, 나는 사실 이런 흐름이 오기 한참 전부터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다. 왜냐고? 이재명이 나에게는 최선의 후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재명을 어떻게 지지하게 되었을까?

대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 민주당 대선 경선부터였다. 당시 나는 추미애 후보를 지지해서(당선될 수 있는 여성 후보를 만나고 싶었다), 1차 국민 선거인단으로 참여해 추미애를 찍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던 권인숙 의원이 이재명 열린 캠프에 참여했다는 소식에 조금 충격을 받게 되었다. 물론 내가 정치에 매우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민주당원인 것도 아니어서 당 내부의 일은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여성 후보인 추 후보가 아닌 이미지가 썩 좋지만은 않은 이재명 후보에게 합류했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뭐 그래도 그 당시에는 민주당 경선이 나에게 있어 크게 중요한 사건도 아니었고, 이재명이 압도적으로 당선됐다는 것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나는 지금까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어 본 적도 없고(12 대선은 김순자 후보-이분은 22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를, 17 대선은 심상정 후보를 찍었다), 민주당의 열성 지지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힘에서도 대선 경선을 했다(물론 나는 죽을 때까지 민정당계에 표를 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때 성범죄 무고죄 강화 신설,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한 군 사기 저하 등 윤석열 후보의 수많은 망언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심각하게 반(反)페미니즘적일 뿐만 아니라, 시대 착오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각종 막말에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로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윤석열이 국민의 힘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이번 대선은 무조건 이재명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 생각은 3월 9일까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나는 '윤석열'이라는 적을 막기 위해 여자들이 최대한 결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재명이 모든 면에서 완벽한 후보도 아니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수많은 오해들이 아직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를 완전히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고, '윤석열을 막기 위한 유일한 대항마'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짧은 순간 갈 곳 잃은 남자들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는 이재명(펨코에 글 업로드, 홍준표 지지자 글 공유, 여사친 발언, 씨리얼 출연 취소 등)에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번 대선의 정답은 이재명뿐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물론 김남국은 도게자해야한다).

 

트위터에서는 그의 일부분만 확장되고 과장되어 "1이나 2나" 프레임이 강화되어 갔지만, 나는 그런 관점에 절대 동의가 안 됐다. 이재명의 수많은 여성 공약, 청년 공약들은 절대 윤석열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탈모 관련 공약이 붐업되자 이럴 시간에 여자나 챙기라는 트윗이 많이 돌았으나 그건 이재명이 내놓은 공약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전체적인 트위터의 분위기를 보면서, 나는 왜 여자들은 자기들의 이득을 제대로 챙길 줄 모를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여성들이 심상정 후보를 찍어서 얻을 만족감보다, 윤석열을 막고 이재명이 당선되어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득이 훨씬 크다고 나는 판단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치 얘기를 할 만한 공개 계정도 없었고, 트위터의 여론을 바꿀 만한 영향력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 답답해하기만 했을 뿐이었다.

 

 

전략 지지에서 소신 지지로

그러던 와중에 이재명에 대한 오해가 점차 풀려 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욕설, 전과, 스캔들 등의 논란을 사실로 알고도(물론 사실이 아니다) 지지한 것이라 이를 기점으로 오히려 이재명에 대한 감정이 좋아졌다. 단순히 '윤석열을 막기 위한 유일한 대항마'로서 지지할 뿐만 아니라 정치인 이재명 자체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유능한 행정가였고, 또 모든 의견에 귀를 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닷페이스 출연도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내 반페미 인사들(대표적으로 김남국)의 반대를 뿌리치고 닷페이스에 출연한 이재명은 상식적이고 친여성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지지율은 오르지 않았고, 트위터리안들과 여초 유저들에게 이재명은 여전히 '펨붕이'였다. 공약과 여러 행보들은 그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선 날짜까지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혼자 맘을 졸이던 나날이 있었다. 그의 닷페 출연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동시에 현명하지는 않은 결정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글자만 보고도 해당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지만, 여성들은 이재명에게 그렇게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재명 당선을 간절히 바라는 입장에서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여초 여론의 반전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이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여초와 트위터 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세상이 크게 뒤집히기 시작했던 것은 불과 대선 2주 전쯤이었다(이게 한 달쯤 전이었다면 좋았었겠다는 마음이 있다).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재명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쏘리재명, 절박재명, 태극기재명, 발치, 잼칠라 등의 밈이 생겨났다. 이에 화합하듯 이재명도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인사 영상을 남기기도 했다. 마지막 일주일은 인터넷도, 유세 현장도 축제 분위기였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였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혹시 어쩌면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낙선, 그리고…

나는 대선 날에 잠을 못 잤다.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유력이 뜨던 순간에도 마지막 희망을 놓지 못했던 것 같다. 0.73%p라는 역대급 표차에 허탈함이 커서 눈물도 안 났다. 다 자신의 책임이라는 이재명의 낙선 인사에 무척 우울해졌다. 25만 표로 앞으로의 5년이 결정된 게 분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이미 윤석열의 당선이 결정된 이상 계속 무너져 있으면 안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우선 제일 먼저 민주당에 입당 신청을 했다. 이재명과 민주당을 응원하기 위한 트위터 계정도 개설했다. 많은 2030 여성들의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민주당에서도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내는 등 반응을 보이니 이런 게 정치적 효용감이구나 싶어 조금은 즐거워졌다.

 

여전히 대선 결과를 생각하면, 또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절망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국민도 반이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5년 동안 열심히 살아 보려 한다. 2027년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위해 천천히 달려 보자!